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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문학] 리더는 고정된 시각을 갖지 않는다 - 노자리더십 8

등록일 2022년02월08일 20시56분 트위터로 보내기


 

 

 

노자가 도덕경 49장에서 말하는 고정된 마음이란 정해진 기준을 두고 생각함을 뜻한다.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다는 노자의 말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인 도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도’라고 그대로 내버려 둠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공자는 인간의 도를 ‘예’라는 고정된 의미를 주었고 노자는 도에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 그대로 ‘도’라고 불렀다. 지금의 시각에서는 인간의 길을 인간이 정함이 마땅한 듯 보이지만 공자와 노자가 출현하기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신이 모든 것을 정했다. 은나라의 갑골문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공자와 노자가 살았던 주나라 이전 은나라 당시에는 전쟁을 할지말지와 같은 국가의 중대사를 인간이 결정하지 않고 점을 쳐서 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북의 등껍질에 기록했다. 

 

모든 것을 신과 타고난 계급이 결정하던 문화는 철기가 출현하고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여 부가 이동하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신의 명령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신의 역할이 약화된 자리는 인간이 대신하게 되었지만 기준이 없었다. 무엇을 인간의 길로 삼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을 철학자라 부른다.

 

최초의 철학자는 공자와 노자였다. 공자는 인간의 길을 인간에서 찾았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인간이 자신의 부모, 자식에게 대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 고귀함이라 믿었다. 혈연에 기반한 효를 인간 본질의 씨앗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인(仁)이라 이름 붙이고 인을 기본으로 남을 대할 때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듯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였다.

경건한 마음은 예(禮)라고 불렀다. 

 

 

‘인(仁)을 기본으로 삼아 예(禮)에 이르도록 배우고 익혀라’ 

 

이것이 공자가 말한 도(道)였다. 노자는 여기에 반론을 제시한다. 공자가 말한 예(禮)는 인간 삶의 기준으로 삼기에 훌륭한 덕목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정해진 기준이 되는 이상 그것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배척하게 마련이다. 고정된 마음이 된다. 그러니 인간의 길에 정해진 기준을 두지 말자고 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행동하자고 말한다. 무위자연이다. 기준을 정할 수 없으니 도를 그저 도라고 부르자고 말한다. 노자의 무위자연은 상(相)을 두지 말라는 불교철학에도 잘 나타난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옛날 어느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3년 수행에 들어갔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암자에 홀로 들어가 하루 세 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좌선하며 수행 정진했다. 3년째 되던 해 겨울, 양식이 떨어지고 땔감도 부족해 마을로 내려갔다. 어렵게 양식과 땔감을 구해 암자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어야 할 암자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을 열어 보니 한 스님이 따뜻한 방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땔감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불을 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로 된 부처상이 없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아궁이에서는 이미 마지막 남은 목불의 다리가 타고 있었다. 그는 낯선 스님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추워도 수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부처님을 땔감으로 쓸 수 있느냐?”
그러자 그 낯선 스님이 갑자기 아궁이로 달려 가더니 부지깽이를 들고 불타고 남은 재를 뒤지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사죄는 하지 않고 갑자기 재를 뒤지느냐?”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사리 찾는다”
부처님을 화장했으니 사리가 나왔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놈아, 나무로 된 부처에 무슨 사리가 있느냐?”

이번에는 암자의 수행자가 이렇게 말해버리니 낯선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는 부처님을 땔감으로 썼다고 난리를 피우더니 이제는 또 부처님 아니라는 얘기냐”

 

 

이 말을 듣는 순간 수행자는 깨우쳤다. 자신이 고정된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마땅히 머무는 바없이 마음을 낸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준에 머물러 있었다. 처음에 부처를 땔감으로 썼다고 화를 낸 것은 나무로 된 조각상이 부처라는 의미였고 낯선 스님이 사리를 찾는다고 했을 때는 목불이 나무토막이지 무슨 부처냐는 뜻이었다. 필요에 따라 자기 상을 달리하여 집착했다.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면 목불을 보고 기도할 때 목불이 부처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저것은 그저 나무일 뿐 수행의 근원은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마음도 함께 갖고 있어야 한다. 고정된 상을 갖고 있으니 나의 생각에 반하는 행동에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조직에서 고정된 마음을 가지기 쉬운 대상이 바로 사람이다. 채용할 때부터 특정 지역이나 학교, 외모에 정해진 상을 부여해 가려서 사람을 받기도 하고, 입사 후 한번 저지른 실수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끝내버리기도 한다. 노자와 더불어 도가 철학을 대표하는 장자는 모든 사람은 그에 맞는 쓰임이 있다는 의미를 ‘지리소 이야기’에서 전한다.

 

지리소라는 사람은 아래턱이 배꼽에 닿고 어깨는 머리보다 높이 올라가 있었으며 두 넓적다리가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불구의 몸이었지만 바느질과 빨래를 하기에는 알맞은 몸이라 제 한 몸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다. 몸이 구부러져 있어 남들보다 키질을 잘해 키를 까불러 알곡을 고르는 일로 열 식구를 넉넉히 먹여 살렸다. 나라에 전쟁이 나 병사를 징발할 때 지리소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깨를 치켜들고 다녔다. 전쟁을 치르기에는 적합한 몸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라에 큰 부역이 있어도 노역의 고통을 받지 않았다. 흉년이 들어 관청에서 백성에게 곡식을 내릴 때는 남들보다 더 많은 양인 석 섬의 양식과 열 다발의 땔감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불구의 몸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장자가 지리소를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고정된 상을 짓지 말라는 이야기다. 지리소는 몸이 일반 사람과 다르게 생겼으므로 오히려 바느질을 잘했고 빨래와 키질로 돈을 벌기에 적합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채용할 때 조직의 역할에 맞는 사람을 선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관찰한 결과로 업무를 부여하고 능력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 이는 리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훌륭한 리더, 나쁜 리더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적합도가 다를 뿐이다. 이를 리더십 상황이론이라 하며 대표적으로 피들러의 상황이론과 허쉬와 블랜차드의 상황이론이 있다. 특히 허쉬와 블랜차드는 구성원을 일을 잘한다 못한다, 능력이 있다 없다라는 고정된 시각으로 보지 말고 업무 수준, 동기부여 수준에 따라 적합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능력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구성원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할 리더십이란 지시적 리더십, 코칭형 리더십, 참여적 리더십, 위임형 리더십이다.

 

 

성인은 대상에 대해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는다. 사람을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구분 짓지 않는다. 설령 구분지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하는 행동에는 구분이 없다. 선한 사람에게도 선하게 악한 사람에게도 선하게 대한다. 이것이 바로 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리더십이다.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글쓰기와 책쓰기]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저자
    유튜브 : 책 읽어 주는 강사, sjrai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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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기자 (js@koreabizreview.com)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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