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명작 ‘싯다르타’에서 노자의 도를 보다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모든 이의 기대 속에 존경받는 성인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싯다르타 자신만은 의문을 가졌다.
브라만의 경전과 제례, 재물이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줄 수 있는지를. 참 자아를 찾게 해주는지를. 마침내 싯다르타는 신분과 재물을 버리고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진리를 찾아 사문(수행자)이 된다.
그가 찾는 진리란 텅빈 마음으로 평정을 구하여 기쁨과 슬픔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상태였다. 싯다르타는 함께하는 수행자들에게서 명상하는 법과 수련하는 법을 배우지만 그것은 일시적 자기 도피를 가져다 줄 뿐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무렵 싯다르타는 부처 고타마를 만나게 된다. 고타마의 얼굴은 기쁨도 슬픔도 없는 조용한 미소만을 띤 해탈의 표정이었다.
친구 고빈다는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제자가 되기를 청하지만 싯다르타는 다시 의문을 갖는다. 고타마가 사문 (수행자)보다 특별한 해법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부처 고타마에게 말한다.
"저는 세존(부처)에게서 인과율에 의한 생과 멸의 법칙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존께서 경험하고 얻은 진리입니다. 해탈은 가르침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 고빈다를 두고 다시 수행의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지금 세존의 제자가 된다면 세존의 가르침, 저의 복종, 승단을 저의 자아로 만들까 두렵습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시선과 미소를 보고 해탈의 모습이 바로 저것임을 깨닫지만 이는 배움이 아닌 스스로 경험할 때 알 수 있다 믿었다.
바로 자신을 스승으로 삼은 것이다. 싯다르타는 경험으로 배우기 위해 다시 세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기생 카말라였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남자가 되어 사랑을 얻는 법을 배운다. 또한 상인 카와스와미와 함께 일하며 장사하는 법을 배우고 재물을 모으기도 하고 잃어도 본다.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들이 가진 본성만은 온전히 배울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작은 이익과 손해에도 집착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브라만에서 수행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고 세속에서 스스로 배우고자 왔지만 그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그는 다시 떠난다. 그동안 모은 재물도 집도 버리고 빈손이 되었다. 이제는 목적도 없다.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진 듯 했다. 강물로 몸을 던졌다.
그때 어딘선가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영혼 구석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것은 완전함을 뜻하는 '옴'이었다. 완전함 그것이 바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진리였음을 다시 각성한다. 그제서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이 편안함의 이유를 생각했다.
그것은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옴의 소리를 듣고 자아를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찾던 자아를 버리자 고통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전, 금욕, 노력, 지식 그동안 믿어왔던 가르침은 모두 방해물일 뿐이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준 강가에 머물기로 한다. 뱃사공 바스데바의 조수가 되어 그의 오두막에서 한끼의 빵을 먹으며 생활한다. 그리고 뱃사공 바스데바에게서 배운다. 강은 폭포에서 급류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동시에 존재하지만 과거와 미래에는 없이 현재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모든 원인은 시간에 있음을. 이제야말로 해탈에 이른 것 같았다.
그때 부처 고타마의 입적을 보기 위해 강을 건너려던 카말라와 재회한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였다. 그러나 뱀에 물린 카말라는 죽게 되고 오두막에서 아들과 함께 살게 된다. 살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된다. 맹목적 사랑이다.
그러나 아들은 오두막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돈과 배를 훔쳐 도망가고 만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찾아 쫒아 가면서 그 모든 것이 집착임을 알게 된다. 아들을 찾고자 함은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망 때문임을. 다시 한번 경험으로부터 배운 싯다르타는 아들을 보내준다.
그리고 마침내 온전한 깨달음을 얻는다. 일체의 선과 악, 일체의 그리움, 일체의 괴로움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된 상태가 바로 옴, 완전의 모습임을. 어느 하나의 개념, 하나의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고통의 소리와 웃음의 소리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완성임을.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진리임을. 그리고 말한다.
"돌은 지금은 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흙이 되고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먹는 것이 된다. 돌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가 바로 돌이면서 흙이면서 식물이면서 신이면서 부처인 것이다"
싯다르타가 깨달은 도는 배움이 아니라 실행에서 온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싯다르타'에서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가 도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결국 도란 하나의 고정된 진리가 아닌 모든 반대되는 개념들의 집합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완전함이라고. 이 진리는 경전과 스승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구할 수 있으며 경험하는 과정에서 겪는 실패조차도 완전성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돌은 흙이기도 하고 식물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다.
삶은 기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는 것 자체이며 그 속에서도 온화한 미소를 지을 줄 알아야 한다. 모든 형상, 모든 감정 위에서 단일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상태가 곧 해탈이다.
싯타르타의 친구 고빈다는 해탈의 도를 얻고자 고타마의 제자가 되는 쉬운 길을 택했지만 싯타르타는 자신의 몸으로 배우고자 실행의 길로 떠났다. 이처럼 리더란 배우는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학(學)을 넘어 습(習)을 행하는 자다.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글쓰기와 책쓰기]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저자
유튜브 : 책 읽어 주는 강사, sjrai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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