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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정의 리더십, 아베 피에르

인정 리더십

등록일 2020년01월10일 22시18분 트위터로 보내기


[빈민을 위해 쓰레기장에서 고물을 수집하는 모습]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프랑스 신부 아베 피에르(1912~2007)는 1947년 어느 날 파리 근교에 오래된 2층 집을 구입했다.

이 낡은 집을 직접 수리한 그는 엠마우스라는 간판을 걸고 무료 숙박시설로 만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빈민과의 인연은 훗날 그를 빈민의 아버지로 불리게 한다. 히틀러의 서슬이 퍼렀던 2차대전 중에는 유대인을 숨겨 주고,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핍박할 때는 유대인을 비판하며 사제의 결혼과 여성의 성직 참여에 찬성표를 던진 강단 있는 피에르 신부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1954년 겨울 라디오 연설에도 나타난다.

 

유래없는 한파가 몰아치던 1954년 1월 31일, 길에서 얼어 죽은 노파의 주머니에서 집세를 내지 못해 발부받은 퇴거 명령서가 발견된다. 이 소식을 접한 피에르 신부는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가 마이크를 잡는다.

 

“친구들이여, 도와주십시오! 오늘 새벽 3시에 한 노파가 길에서 얼어 죽었습니다. 퇴거 명령서가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집이 없어서 밤마다 추위 속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빵도 먹지 못한 채 길거리에 웅크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2천 명도 넘습니다. 이런 공포 앞에서 긴급 주택단지 건설은 결코 충분한 응급구조가 되지 못합니다. 바로 오늘 밤에 프랑스의 모든 도시에 각 구역마다 현수막을 붙인 텐트를 치고, 밤새도록 불을 밝혀 놓읍시다. 현수막에는 이런 글을 써놓도록 합시다. ‘고통당하는 자는 누구든 여기 들어와서 먹고, 자고, 다시 소망을 찾으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참한 가난 속에서 죽어가는 형제들 앞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이런 불행이 계속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즉시 서로를 사랑합시다. 여러분 덕분에 어떤 사람도, 어떤 아이도, 오늘 밤은 차가운 아스팔트나 파리의 강둑에서 잠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호소문의 반응은 뜨거웠다. 밤사이 구호물자가 곳곳에서 도착했으며 파리 시내에만 50곳의 보호소가 설치되었다. 그날 밤 길에서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을 계기로 프랑의 엠마우스는 세계의 엠마우스가 된다. 스위스 베른에서는 20개국 70개 엠마우스 단체가 참여한 제 1차 국제 엠마우스 총회가 열린다. 그 후 엠마우스 운동은 더욱 확산되어 현재는 50개국에서 500개의 단체가 활동케 하는, 훗날 역사에 기록되는 값진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반골 기질과 지체 없는 추진력을 갖춘 아베 피에르를 세계적 리더로 만든 것은 그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였다.

 

아베 피에르 신부가 엠마우스를 설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달려가 왜 자살하느냐고 물었더니 조르주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대답한다.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낸 후 죄를 지어 감옥에서 20년을 보내고 이제 아내마저 떠나고 나니 더이상 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시오. 내가 지금 빈민들을 위해 집 짓는 일을 하는데 일손이 모자랍니다. 집짓기가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이 말에 조르주는 자살을 잠시 뒤로 미루고 피에르를 따라 나선다. 엠마우스 운동의 첫 번째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몇 명의 노숙자가 공동체에 합류하자, 피에르 신부는 연이어 천막촌과 판자촌을 건설했다. 엠마우스의 첫 멤버였던 조르주는 죽을 때까지 15년간 아베 피에르 신부의 곁을 지킨다.

 

“그때 아베 피에르 신부가 돈을 쥐어 주거나 훈계하려 들었다면 그를 따라나서지 않고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도와 달라는 말은 내가 잠시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 날을 회고하는 조르주의 말이다.

 

세상에는 많은 리더십이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영향력의 카리스마 리더십, 구성원의 성숙도와 상황에 따라 지시할지, 지원할지, 참여시킬지, 위임할지 적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상황적 리더십, 리더가 먼저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서번트 리더십 등 이끄는 방법은 다르지만 잘 들여다보면 모든 리더십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행위의 주체가 리더라는 것이다. 카리스마를 보여주든 먼저 희생을 하든 리더가 앞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고 구성원의 변화를 기대한다. 그런데, 아베 피에르의 리더십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한 것도 아니요, 살 수 있는 돈을 준 것도 아니요,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아니다. 그저 도움을 청했을 뿐이다. 20년의 감옥살이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던 사람에게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 것이다. 이 리더십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까? 나는 인정의 리더십이라 부르고 싶다. 잠재력을 인정하고 질문을 통해 그 잠재력을 풀어헤치게 만드는 코칭리더십과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코칭리더십 조차도 리더가 이끄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반면 인정의 리더십은 리더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오롯이 상대가 자신의 가치에 집중하게 만드는 리더십, 인정을 통해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 리더십,

바로 아베 피에르는 인정의 리더십이었다.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저자

유튜브 : 책 읽어 주는 강사, sjraintree@naver.com

 

김민경 기자 (mkkim@koreabizreview.com)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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