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평가, 공정함이 중요한가, 공평함이 중요한가?
[사진 : 팀장이 팀원에게 인사평가 피드백을 주고 있는 모습 (출처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왜 저는 C등급이고, 다른 사람은 B등급인가요?”
인사평가 시즌이 다가올 때마다 리더와 HR부서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질문이다. 겉으로는 평가 결과의 등급을 묻는 듯 보이지만, 그 질문의 이면에는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즉, 그들이 알고 싶은 것은 점수 그 자체가 아니라 평가가 이루어진 과정이 얼마나 납득할 만한 것이었는지, 자신에 대한 조직의 이해가 담겨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영컨설팅그룹 (주)와이즈먼코리아와 코리아비즈니스리뷰(KBR경영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8.4%는 "인사평가의 최종 점수나 등급보다 그 결과가 나온 과정이 얼마나 투명하고 납득 가능한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밝혔다. 이는 오늘날 기업의 인사평가가 점수나 성과급 분배를 넘어 조직 구성원과 기업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성과 공평성, 혼동해서는 안 되는 개념
흔히 '공정성'(Fairness)과 '공평성'(Equality)은 서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사실 이 두 용어는 철학적 기반부터 명확히 구분되는 별개의 개념이다. 공평성은 겉보기에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제공하는 형식적 평등을 의미한다. 반면, 공정성은 각자의 차이와 상황에 따라 조정된 자원을 제공하는 실질적 형평성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한 판의 피자(8조각)를 많이 먹는 남자(최대 6조각 가능)와 적게 먹는 여자(최대 2조각 가능)가 함께 시켰다고 가정해보자. 공평한 분배(Egalitarian Equality)는 각자에게 4조각씩 나눠주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 보기엔 평등하지만, 여자는 2조각밖에 먹지 못하므로 결과적으로 2조각은 낭비되고 남자는 배가 고프다. 반면, 공정한 분배(Fair Equity)는 각자의 최대 섭취량을 고려해 6조각과 2조각을 나누는 것으로, 모두가 만족스럽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쓰인다.
이처럼 인사평가에서도 공정성과 공평성은 개념적으로 전혀 다르다. 공평성은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평가 기준과 목표를 적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력, 직무, 책임 수준이 다른 직원들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정성은 바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여 각자에게 적절한 기대와 기준을 적용하고, 그에 맞는 해석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평성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많은 기업들이 공평성을 확보하기 위해 평가 기준을 통일하고, 동일한 지표를 모든 직원에게 적용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종종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불만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형식적인 평등보다 실질적인 이해와 배려, 즉 공정성을 더 민감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공평함만으로는 평가가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구성원들은 각자의 상황을 무시한 일률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맥락과 조건을 고려해 평가받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평가에 동의하고 몰입할 수 있다. 공평함은 시스템의 기본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그 시스템이 조직문화와 신뢰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정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리더십의 진정한 도전: 공평한 기준과 공정한 해석의 균형 잡기
탁월한 리더는 공평한 기준을 설정하는 동시에, 구성원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정하는 공정한 해석력을 갖춘 사람이다. 리더는 공평함을 위해 평가 기준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평가 결과를 각 구성원의 특수한 상황과 맥락에 맞추어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직원이 목표 대비 성과가 낮았다고 하자. 단순히 기준에 못 미쳤다는 이유로 낮은 점수를 주는 것은 평등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정말 공정한 평가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리더는 그 직원이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 팀 내 지원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리더 자신의 피드백 부재가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이처럼 공평한 틀 위에서 공정한 시선을 갖고 판단할 수 있어야 평가가 조직 안에서 납득되고, 구성원이 성장할 수 있다.
공정성과 공평성의 조화가 곧 조직문화의 힘
공평함만 강조하면 조직은 규율에 매몰되고, 구성원들은 스스로의 조건이 무시된다고 느끼며 점점 냉소적이 된다. 반대로 공정함만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유연하게 기준을 조정하면, 조직 내 신뢰가 흔들리고 특혜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둘은 어느 하나가 우월한 개념이 아니라, 리더십의 품격을 결정짓는 균형의 기술이다.
따라서 인사평가는 단순한 숫자 배분이 아니라, 조직이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나타내는 상징적 장치다. 그 평가는 기준이 명확하되, 해석이 유연하고, 피드백은 따뜻하며, 구성원이 스스로 성장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리더의 가장 큰 도전은 평가 기준을 분명히 하면서도, 구성원의 개인적 차이와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 미묘한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리더만이 진정한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한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글 : 와이즈먼코리아 김해리 수석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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