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조 달러 부채의 경고, 글로벌 경제 지각 변동의 시작
[이미지 :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과 경제위기 (출처 : 코리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5월 16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무디스의 이번 결정으로 3대 신용평가사가 모두 미국의 최고 신용등급을 박탈하게 되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피치(Fitch)는 2023년 8월 각각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바 있다.
이번 강등의 핵심 배경은 미국 정부의 막대한 부채 증가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2025년 5월 기준 36조 2천200억 달러에 달하며,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23% 수준이다. 무디스는 "정부 부채 비율과 이자 지급 비율이 지난 10년간 유사한 등급 국가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강등 사유를 밝혔다.
미국 재정 위기의 실체: 구조적 문제로 드러난 부채 급증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분석된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2025년 4월 기준 미국이 부채 유지에만 연간 6천840억 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며, 이는 2025 회계연도 정부 지출의 16%를 차지한다. 무디스는 이자 비용을 포함한 의무적 지출이 총 재정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4년 약 73%에서 2035년 약 78%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과 관세 정책이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공화당의 대규모 감세 추진과 함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세수 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은 의회가 부채 한도를 4조 달러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공화당 내부와 민주당 간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 타격: 수출과 금융시장 동반 충격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한국 경제에 다층적 충격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부문의 위기 심화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은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 경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소비 둔화는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요 수출 품목의 수요 감소로 직결된다.
이미 2025년 1분기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5% 감소했으며, KDI는 2025년 수출 성장률이 1.8%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대미 수출 환경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크다.
환율 변동성 급증과 자본 유출 위험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과 달러 강세는 한국 원화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2024년 12월 27일 원달러 환율이 1480원을 기록한 가운데, 추가 상승 압력이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강화시켜 신흥국 통화에서 자본 유출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응해 2025년 2월과 4월 기준금리를 각각 25bp씩 인하했으나, 환율 안정화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시장 반응: 예상보다 제한적이지만 중장기 우려 지속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발표 이후 첫 거래일인 5월 19일, 뉴욕증시는 예상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다우지수는 0.32%, S&P500은 0.09%, 나스닥은 0.02% 상승하며 시장이 이미 강등 가능성을 선반영했음을 시사했다. 이는 2011년 S&P 강등 당시 S&P500 지수가 하루 만에 6.66% 급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고문은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하향 조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장기적 파급효과를 우려했다.
특히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면서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설자는 "무제한 돈 찍어내기로 달러와 채권 가치 하락 위험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리스크 가중: 한국의 복합적 도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한국이 직면한 정치적 불확실성과 맞물려 더욱 복잡한 도전을 제기한다.
트럼프 관세 정책의 이중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초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55.7억 달러 무역 적자를 문제 삼았다. 신용등급 강등을 계기로 미국이 세수 확대를 위해 관세 정책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관세 압력을 완화할 수도 있다는 상반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은 과거 '플라자 합의'처럼 주요국과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약달러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국내 정치적 공백의 악순환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공백이 경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CSI)가 2024년 12월 88.4로 11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하며 코로나19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정치적 불안정은 대외 신인도 하락과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부정적 영향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전략적 대응 방안: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구조적 개혁
한국은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가져올 충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한 종합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수출 다변화를 통한 대미 의존도 완화
한국은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세안, 인도, 중동 등으로 수출 시장을 적극 다변화해야 한다. 2024년 베트남 수출이 전년 대비 15% 증가한 사례처럼, 신흥시장과의 경제 협력 확대가 핵심이다.
특히 한-아세안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활용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통해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
내수 활성화와 금융 안정성 강화
정부는 2025년 2분기 1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내수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중소기업 금융 지원, 가계 소득 증대 정책을 병행해 내수 기반을 튼튼히 해야 한다.
동시에 외환보유액 확충과 통화스왑 협정 확대를 통해 금융시장 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현재 5천억 달러 수준인 외환보유액을 6천억 달러로 확대하고, 주요국과의 통화스왑 한도를 늘려 금융 충격 완충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신성장동력 발굴
미국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전환과 혁신 생태계 구축이 필수다. 인공지능, 바이오헬스, 그린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K-뉴딜 2.0을 통한 디지털·그린 전환 가속화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공고히 해야 한다.
결론: 전환점에 선 한국 경제, 선제적 대응이 관건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한국 경제에 수출 감소, 환율 불안, 자본 유출 등 다방면의 충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대미 의존적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고 내재적 성장 동력을 강화할 기회이기도 하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이번 위기 역시 구조적 개혁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수출 다변화, 내수 활성화,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새로운 성장 모델 구축이 성공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경제 정책 추진이 위기 극복의 전제 조건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외부 충격을 한국 경제의 근본적 체질 개선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연구 및 사례분석 연구 : KBR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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