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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문학] '무(無)가 쓸모를 낳는다' - 노자리더십 4

등록일 2021년05월12일 14시10분 트위터로 보내기


 

 

 

세상은 유(有)와 무(無)라는 반대되는 개념이 새끼줄처럼 꼬인 형태로 이루어져 기능한다. 

 

여기서 유무(有無)는 있음과 없음을 뜻함과 동시에 반대되는 의미를 갖는 한 쌍을 말한다. 
자동차라는 탈 것은 편리함을 주기도 하지만 사고의 위험도 함께 품고 있다. 남녀간의 만남은 사랑과 함께 이별도 잠재한다. 이것이 유(有)와 무(無)가 함께 있음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은 형상이라는 유(有)가 있다. 

그릇이 음식을 담을 수 있음은 무(無)라는 텅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유(有)로 존재하는 그릇은 무(無)가 없으면 기능을 할 수 없다.

 

 

반면 무(無)는 유(有)의 몸을 빌리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그릇이라 불리는 유(有)는 사용하는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이로움을 있게 하는 것은 무(無)인 것이다.

방도 마찬가지다. 실내에 공간이 없고 문과 창이 뚫어져 있지 않다면 방은 사람을 담지 못한다. 형태라는 유(有)가 있기에 방이라 불리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無)다. 바퀴는 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어 양쪽이 축으로 연결되고 바퀴살 또한 그 구멍으로 모여 바퀴가 형태를 갖출 수 있게 한다.

 

유(有)와 무(無)는 무엇이 우월하다 말할 수 없지만 노자는 눈에 쉽게 띄는 유(有)보다 잘 인지하지 못하는 무(無)의 역할을 강조한다. 무(無)는 언뜻 보기에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무(無)가 있어 유(有)가 자신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 


무(無)는 때로 유(有)를 잉태하기 위한 결핍과 고난을 뜻하기도 한다. 기업의 사례에서 혁신적인 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성공을 지속하지 못하고 신생기업에게 자리를 내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성의 것을 무너뜨리고 시장에 진입하여 유(有)를 누리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바쁘다. 결핍에서 나온 도전 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무(無)의 상황을 잊는다. 그러면 곧 무(無)로 가득찬 스타트업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유(有)에서 내려오게 된다. 결핍이라는 필요의 무(無)가 유(有)를 낳는 것이다.

 

달콤한 유(有)의 상태에서는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내가 지금 유(有)의 상태에 있는지 무(無)의 상태에 있는지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유(有)로만 가득 차 있다면 일부러 무(無)를 취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지금 무(無)의 상태라면 실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 유(有)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무(無)와 유(有)를 순환하는 기업, 인텔

 


 


인텔 인사이드라는 카피로 유명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최강자 인텔의 원래 주력 제품은 메모리 반도체였다. 1968년 설립되어 메모리 반도체로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1980년대에 들어 일본 기업의 강력한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일본의 저가 공세를 견디다 못한 인텔은 1985년 영업적자가 1억 달러를 넘어서게 되어 존립의 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이때 사장이었던 앤디 그로브는 최고경영자인 고든 무어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지금 상황에서 주주들이 우리를 새로운 경영진으로 교체한다면 그들은 인텔에 와서 가장 먼저 무슨 일을 할까요?”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가 해놓은 것을 다 없애고 새로운 시스템과 제품을 만들지 않을까?”
“그럼 교체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것이 인텔 인사이드 신화의 시작이었다.

메모리 반도체의 최강자였던 당시 인텔은 새로운 유(有)를 창조해야 할 시점임을 알고 기존의 유(有)를 버리고 스스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메모리 반도체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 인텔은 더 이상 외적 요인에 의해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무(無)로 돌아갈 시점을 정해 놓는다. 이것이 바로 전략의 변곡점이다.


전략적 변곡점 (SIP : Strategic Inflection Point)은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다.

앤디 그로브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은 후 제품의 생명주기인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에서 성숙기의 정점을 전략의 변곡점으로 보고 그 지점을 지나기 전에 지체없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시장 지배자의 위치에서 현금을 거두어드릴 자리가, 동시에 신규 진입자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자리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메모리 사업에 집중할 때는 일본기업이라는 외부 경쟁자에 의해 무(無)의 위치로 돌아가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유(有)를 창조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유(有)를 위한 무(無)로 내몬다. 그것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고독할 줄 알아야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언제 고독한가? 선두에 있을 때다. 오래달리기에서도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은 외롭다. 눈앞에는 하나의 표식도 없이 외길만이 뻗어 있고 날아오는 공기도 제일 먼저 받아 내야 한다. 더 치고 나갈지 페이스를 유지할지도 스스로가 기준이 된다. 반면 선두를 앞세우고 가는 사람은 체력 안배와 전략 구사 측면에서 훨씬 수월하다. 머리가 복잡하지 않다. 선두가 어떻게 하는지 잘 주시하면 된다. 다른 종목이나 공부도 마찬가지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 있듯 주변에는 언제나 수많은 도전자들이 있다. 견제와 관찰의 대상이 된다.

 

정상을 지킬 수 있을지 두렵다. 고독하다. 이 고독은 어떻게 떨치는가?

 

역설적이지만 지키기 위한 고독은 새로운 도전의 고독으로 대체될 때 사라진다. 정상의 자리에 있음을 잊고 스스로 도전자가 되어야 한다.

도전이라는 날선 고독 앞에 설 때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최고의 홈런타자가 겨울 비시즌에 타격폼을 수정하고 최고의 에이스 투수도 끊임없이 새로운 구종을 개발한다. 모 프로야구단의 연습장 불을 끄고 마지막에 숙소로 가는 사람은 양신이라 불리는 타격왕 양준혁이었다고 한다. 그가 불을 끄고 나갈 때 구장 반대편 어둑신한 곳에서 누군가 스윙연습을 하고 있길래 가보니 홈런왕 이승엽이었다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각고의 노력으로 새로운 책을 낸 작가가 잠깐의 희열 후에 찾아오는 고독을 없애는 방법도 다시 백지 앞에 앉는 것이다. 타격왕, 홈런왕, 책의 출간은 분명한 유(有)다.

 

수많은 도전을 뿌리치고 오래도록 정상을 유지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유(有)의 자리에 있기 위해 스스로 무(無)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인텔 앤디 그로브와 같다.

 


道可道非常道 도가도비상도 
名可名非常名 명가명비상명 


도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도덕경 1장에서 노자는 세상에는 고정된 개념이 없음을 말한다. 기업도 개인도 하나의 성취를 얻는 순간 그것은 이미 성취가 아닌 스스로 깨뜨려야 할 도전과제로 변한다. 성취라는 유(有)를 도전이라는 무(無)로 빠르게 대체할 때 새로운 유(有)를 얻을 수 있다.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무(無)임을 알고 스스로 무(無)에 처하는 사람 그가 바로 자신을 이끄는 리더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유(有)의 자리에 있으면서 동시에 무(無)에 머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도(道)다.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글쓰기와 책쓰기]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저자
    유튜브 : 책 읽어 주는 강사, sjrain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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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 (mkkim@koreabizreview.com)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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