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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임파워먼트는 하루아침에 실현되지 않는다

등록일 2019년10월04일 18시54분 트위터로 보내기


 

내가 신입사원이었을 때 처음 발령받은 부서는 생산팀이었다.

자동차 부품회사의 생산팀은 생산 라인에서 계획된 물량을 고객이 원하는 품질로 생산해 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 업무를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제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물론 설비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현장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 나의 팀장님은 신입사원이 업무를 일정 수준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혹독한 OJT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해야 할 업무 대신 숙제가 주어졌다.

그런데 그 숙제는 신입사원으로서는 도저히 완벽하게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미처 다 채우지 못한 답을 들고 검사를 맡으러 가면 팀장님은 정답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닌 약간의 힌트만 주고 내일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하셨다. 결국 월요일에 최초로 지시받은 그 숙제는 조금씩 힌트를 받아가며 금요일이 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두 달은 넘게 진행되었다. 막막한 과정이긴 했지만 덕분에 나는 빠르게 생산라인을 이해할 수 있었고 현장 근무자분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두 달이 지나고 팀장님과 OJT 졸업 기념 회식을 하면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부여한 과제가 그저 즉흥적으로 던진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번에 답을 구해올 수 없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후 지시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녀석이 오늘 퇴근 무렵에 이런 틀린 답을 들고 오면 요만큼의 힌트를 주고, 내일 또 조금 더 주고 하는 식으로 결국 하나의 과제를 고생 끝에 일주일 만에 완료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배신감이 밀려오기 앞서 탄성부터 뱉어냈다.

 

“이게 리더구나”

 

그 뒤로 나는 팀장님으로부터 같이 입사한 다른 부서의 동기에 비해서 훨씬 많은 권한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신입사원임에도 현장에 구매해주는 설비 부품이나 소모품에 대해서는 예산의 재량권도 있었으며 급한 일은 사전보고에 앞서 먼저 시행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이미 그럴 역량이 되었고 그런 나에게 팀장님은 권한을 주었던 것이다.


 

 

임파워먼트(empowerment)

 

임파워(empower)란 ‘권한을 분산하다’ ‘권한을 이양하다’는 말로 변화가 일상이 된 현대의 경영환경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다.

특히 환경과 고객니즈가 급변하므로 일선에서 고객과 접점을 이루는 실무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조직의 일에 참여하고 일의 의미와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밀레니얼 세대의 유입에 따라서도 더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고, 제자가 준비되었을 때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듯 권한 이양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과 조직 모두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는 조직 차원의 문제다.
먼저 관료제적 조직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관료제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답답한 조직구조의 대명사처럼 되긴 했지만 막스 베버가 제시한 바에 따라 바르게 기능한다면 탄탄한 조직을 만드는데 이만한 구조도 드물다 할 것이다.

인간에 의한 지배가 배제되고 철저히 규칙과 규정에 따라 업무가 처리되며 전문성에 의해 서열이 정해지므로 위에서는 항상 올바른 의사결정이 내려오며 그에 따라 조직의 하단에서는 정해진 답을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권한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정보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속성이 제 때에 작용하지 못할 경우 관료제는 변화와 속도를 특징으로 하는 현재 환경에서 잘 기능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한 해법으로 실무자인 접점관리자와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사소한 문제는 일선 관리자가 리더와 소통하기 전에 본인의 권한으로 처리하는 것이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고객의 경험이 기업에 대한 인상으로 발전하기 전에 실무자에게 처방을 할 권한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임파워먼트다. 따라서 조직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없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곳은 어디이며 그곳에 어떤 권한을 주어야 할지 체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둘째는 리더의 역할이다.
변화의 시대에 리더는 더 이상 지시하는 존재가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구시대의 리더는 답을 가르쳐 주고 실무자는 답을 수행하는 존재였다면 변화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는 구성원과 함께 짐을 나누어지는 존재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함(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뜻하는 VUCA를 특징으로 하는 경영환경에서는 모든 것을 혼자하는 슈퍼 리더가 아닌 각자의 위치에서 빠르게 변화에 대처하는 구성원들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리더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과연 나의 구성원은 현재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어깨를 가졌는지, 얼마나 많은 역할과 책임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파악이 되었다면 그에 맞는 권한을 부여하고 어깨와 그릇이 작다면 그것을 키워내는 계획부터 수립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권한 이양은 하루아침에 이루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리더 자신은 권한을 내려놓았을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저 잘해오던 일을 계속 잘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피터의 원리에 갇히는 리더가 아닌 권한 이양으로 하위의 역할은 구성원에게 맡기고 내가 추구해야 할 상위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셋째는 일선 관리자의 준비된 역량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 일의 의미와 가치, 자율성을 중시 여긴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지만 중요시 여기는 것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일은 다르다. 자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한 역량이 요구되고 자율을 누린다면 책임감 또한 함께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무자는 우리 조직의 목표와 가치사슬 상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성과를 명확히 정의한 후 그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역량의 문제는 개인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은 각자의 몫이다’라는 말은 ‘당신은 우리의 조직원이 아닙니다’ 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팀의 직무별 요구 성과와 역량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장기적 계획 아래 구성원이 각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계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과거 나의 팀장님이 나에게 혹독한 OJT로 나의 역량을 일정 수준으로 올려 놓고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세우기 전에 ‘부하직원 당신은 엄연한 우리의 조직원이므로 이러한 역량을 갖추어 이러한 일을 수행해 주세요’ 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임파워먼트는 조직성과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잘못 사용했을 때 피해는 고스란히 조직의 몫이 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슈다.

또한 한번 스쳐 지나가는 HR의 유행으로 느낄 것이라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장기적으로 계획해야만 한다.

 

다음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한다.

 

우리 조직을 둘러싼 VUCA는 무엇인가?

우리 조직에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우리의 구성원은 지금 어느 수준인가? 오늘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 / 손정 와이즈먼코리아 겸임교수, [당신도 불통이다] [업무력] 저자, sjraintree@naver.com

 

김민경 기자 (mkkim@koreabizreview.com)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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